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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1부] 국내 태양광의 역설 – '늘어나는 발전소, 사라지는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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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기자
2025-10-09 11: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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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태양광 보급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2025년 기준 누적 설치용량은 30GW를 넘었고, 전국 18만여 곳의 발전소가 전력을 생산 중이다겉으로는‘그린 붐’이지만 산업의 심장은 식어가고 있다공장은 멈췄고 기술 인력은 떠났으며 국산 부품의 비중은 10%도 남지 않았다.


태양광이 성장할수록 산업은 쇠퇴하고 있다보급 통계는 늘었지만 시장의 이익은 중국으로 향한다한국의 태양광 산업은 설치 산업으로만 남았고 기술·제조·공급망은 무너졌다정책은 환경을 말했다가 곧 정치로 변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겼을까정부의 보급 중심 정책, 중국의 가격 공세그리고 정책 신뢰의 붕괴가 한 축을 이뤘다RE100”과 “탄소중립”이 세계의 공통어가 된 지금 한국은 기술 강국이면서도 산업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본지는 태양광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진단하고 정책 전환 이후 산업 생태계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5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편집자 주).


국내 태양광 보급률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RPS설비 플랫폼에 따르면 202510월 기준 전국 태양광 발전소는 184천여 곳, 설치용량은 30GW를 넘어섰다. 겉으로 보기엔 ‘그린 붐’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한때 40여 개에 이르던 국내 셀·모듈 제조업체는 현재 절반 이하로 줄었다. 남은 기업들은 조립과 수입 유통에 치중하고 기술 개발 인력은 해외로 떠났다.

충북 진천의 한 중견 셀 업체 대표는 “보급 통계는 늘었지만 국내 생산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세 차례 설비를 증설했지만 2023년을 끝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산 부품이 절반 가격으로 들어오는데 국산 기술로는 경쟁이 안 된다.” 그가 밝힌 현실은 한국 태양광 산업의 축소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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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시장 점유율 수치를 보면 격차는 극단적이다. 2022년 기준 국내 태양광 셀의 95%, 인버터의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모듈 부문 역시 8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태양광이 ‘보급산업’으로만 분류되고 제조 생태계는 정책의 지원망 밖으로 밀려난 결과다.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설치량은 늘어도 산업 기반은 약화되는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전북 김제의 한 모듈 제조공장은 올해 초 전격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직원 60명 중 절반이 해고되었고, 공장은 물류 창고로 전환됐다. 인근 군산·익산의 중소 시공 업체들은 “중국산 패널을 조립해 납품하는 수준으로 산업이 단순화됐다”고 토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급은 늘지만 부가가치가 사라진 산업은 오래 못 간다”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은 정책의 초점이다. 정부는 설치용량 목표를 우선시했고 그 과정에서 제조 생태계 보호 전략은 부재했다. RPS 제도는 발전량에만 인센티브를 주었고 국산 부품을 사용하더라도 별도 가산점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업자들은 값싼 수입 부품을 선택했고 국내 기술은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양적 성장의 착시’라고 부른다. 통계상 재생에너지 비중은 상승하지만 공급망의 국산화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 관계자는 “태양광은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 경쟁의 문제”라며 “보급 확대와 산업 육성을 별개로 보면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경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충남, 전북, 경북 등 주요 제조 거점은 태양광 산업을 신성장 축으로 키워왔지만 최근 2~3년 사이 신규 투자 규모가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일부 지역은 설비 이전이나 폐업으로 산업단지가 공동화되고 있다전북 완주의 한 공단에서는 “패널 설치차량은 늘었지만, 공장 굴뚝은 멈췄다”는 말이 회자된다.

산업 구조를 되살리기 위해선 보급 중심의 정책 프레임을 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학계 전문가는 “보급 목표만 높이는 정책은 단기 성과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 경쟁력은 갉아먹는다”며 “제조 단계의 자립과 기술 고도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태양광 산업은 현재 ‘보급 성과’와 ‘제조 붕괴’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표면적 성장률은 높지만, 산업 생태계의 근육은 이미 소진 단계에 접어들었다태양광의 확산이 국가 탄소중립의 핵심이라면 제조기반의 재건은 그 근간이다보급률은 높아졌지만 산업은 비워졌다

다음 편에서는 이 산업 공백을 가속화시킨 정책 전환의 흐름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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