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PPA 확대 막는 ‘깜깜이 망 이용요금’…독립 규제체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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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이 에너지 전환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국내 제도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솔루션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는 기업들이 PPA 도입을 주저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전력망 이용요금의 불투명성’을 지목했다. 전력망 이용에 어떤 비용이 포함되고 어떤 산정 방식이 적용되는지 확인할 수 없는 구조가 장기 조달 계획 수립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송·배전망을 독점 보유한 한국전력이 자체 기준에 따라 요금을 산정하지만, 요금기저와 계산식이 공개되지 않아 적정성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력망 이용요금을 심의하는 전기위원회도 정부 산하 조직으로 독립성이 약해 제출된 회계 자료를 전문적으로 평가할 역량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전력망 소유자와 요금 결정권이 한 기관에 집중된 한국 전력 규제 체계의 근본적 문제”라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PPA 확대 과정에서 드러난 이해 상충 논란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2년 추진된 ‘PPA 전용 기본요금’은 일반 기본요금 대비 1.5배 높은 수준으로 실제 적용 시 중견 제조업체는 연간 100억 원, 대기업은 60억~100억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었다. 시행은 결국 무기한 유예됐지만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조달을 시도한 기업에만 불리한 요금 체계가 제시됐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 신뢰를 흔들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전력망 규제 체계가 해외 모범 사례에 비해 네 가지 핵심 지표에서 모두 뒤처진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전력 계통 운영기관인 PJM은 송전요금 산정 방식, 비용 항목, 회계자료를 외부에 상세히 공개하며 규제 기능과 사업 운영을 엄격히 분리한다. 영국의 가스·전력시장 규제청(Ofgem) 역시 정부로부터 독립된 규제기관으로, ‘RIIO’ 체계를 통해 송·배전망 운영자의 허용 수익을 사전 통제하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전력망 투자 여부를 요금 승인 기준에 포함한다. 보고서는 영국의 사례를 “독립성과 투명성을 갖춘 전력망 규제 체계의 대표적 모델”로 소개했다.
반면 한국은 △독립 규제기관 부재 △요금 산정 방식 비공개 △넷제로 기반 투자 고려 미흡 △심의 과정 비공개 등 네 가지 항목에서 모두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구조는 PPA 시장의 성장 속도를 늦출 뿐 아니라 RE100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의 해외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전망이다. 신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금융 조달 환경이 악화되는 등 파급 효과도 우려된다.
보고서는 전력망은 자연 독점적 성격을 지닌 만큼 투명성과 감시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적 불공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독립 규제기관 신설, 요금 산정 공식과 비용 항목의 전면 공개, 넷제로 기반 전력망 투자 의무화, 심의 과정의 공개 확대 등이 핵심 개선 과제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전력망 요금 구조가 투명해질 때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재생 에너지 중심의 전력 시스템 전환 속도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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