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원전 단가가 싸다는데 왜 여전히 태양광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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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력 구조를 보면 출발점은 분명하다. 원자력은 현재 전체 발전량의 30% 안팎을 담당하고 있다. 석탄과 가스 등 화석 연료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는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원전 비중이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에서 화석 연료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재생 에너지 확대는 더디다는 것이 현재의 전력 믹스이다. 이 구조만 보면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는 원전을 일정 부분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실제로 원전 확대론이 기대는 논리에는 일정한 타당성이 있다. 한 번 건설해 가동에 들어간 원전은 연료비 비중이 낮고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전력을 생산한다. 특히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처럼 정전 위험을 꺼리는 산업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24시간 안정적인 기저 전원 확보는 정책적으로도 무시하기 어렵다. 또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국제 연료 가격 변동에 덜 민감한 전원을 유지하려는 시도에는 에너지 안보라는 명분도 존재한다. 좁은 국토와 산지 비중을 고려하면 단위 부지당 발전량이 큰 원전을 일부 활용하자는 주장도 일정 부분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곧바로 “원전을 더 많이 지어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형 원전 건설은 착공에서 상업운전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 그 사이 정책 방향이 바뀌고 안전 규제가 강화되면 사업 지연과 금융 비용 증가가 반복된다. 흔히 “원전은 단가가 싸다”는 주장은 완공된 이후 안정 가동을 전제로 한 계산이다. 건설 지연과 정책 리스크 그리고 폐기물 관리와 해체 비용을 포함하면 경제성은 생각보다 훨씬 불확실하다.
기후 목표와의 시간차도 이미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대폭 줄이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했다. 그러나 새로 짓는 원전이 발전에 들어가는 시점은 대부분 2035년 이후이다. 단기 감축이 중요한 2035년 전후의 10년 동안 온실 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전원은 설치 기간이 짧은 태양광과 풍력 그리고 이를 보조하는 저장 장치와 수요관리 기술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시간의 문제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지역사회 수용성도 원전 정책의 중요한 제약이다. 최근 마포구 소각장 논란에서 확인됐듯이 혐오 혹은 위험 시설로 인식되는 기반 시설은 주민 반발이 매우 크다. 소각장만으로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방사능과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있는 원전을 선뜻 수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입지 갈등이 심화되면 사업 속도는 늦어지고 비용은 증가한다.
사회적 갈등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원전의 발전 기여도를 10%만 늘리려 해도 신규 원전 3~4 기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어디에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어느 지역도 신규 원전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실제 부지 선정 과정에서 발생할 갈등은 다시 건설 기간과 비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현실은 이러한데도 일부 집단은 재생 에너지의 한계를 의도적으로 부각하며 원전이 가장 값싼 전원이라는 주장만을 강조한다. 발전 단가가 건설 지연과 금융, 그리고 사회적 갈등 같은 외부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된다.
재정과 전기요금 측면에서도 고민은 남아 있다. 한국전력이 큰 적자와 부채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대형 원전 투자를 또다시 확대하는 것은 재무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원전에 투입되는 자본은 같은 기간 재생 에너지와 저장 장치 그리고 계통 인프라에 투자될 수 있는 자금이기도 하다. 어떤 전원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가 결국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판단이 된다.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재생 에너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비 단가는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졌고 모듈 효율은 개선되고 있다. 공장 지붕과 물류센터 주차장 같은 기존 시설을 활용한 분산형 설치가 가능해 입지 갈등을 줄일 여지도 있다. 설치 기간이 짧고 모듈화되어 있어 정책 환경에 맞춰 속도를 조정하기도 수월하다. 저장 장치나 분산 자원 기술이 결합되면 간헐성 문제는 점차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들어온다.
한국의 재생 에너지 비중이 낮다는 점은 오히려 온실가스 감축 여지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원전 비중은 세계 상위권이고 앞으로 줄여야 할 전원은 석탄과 가스이다. 이 구조를 감안하면 재생 에너지 확대를 중심에 두고 원전을 한정적으로 보완하는 방향이 보다 현실적이다.
원전 확대론은 부분적으로 타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원전을 더 지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주장은 경제성과 사회적 수용성, 그리고 기후 목표의 시간축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약하다.
결론은 분명하다. 앞으로의 전력 정책에서 원전은 여전히 중요한 한 축으로 남겠지만 중심축은 아니다. 전력 전환의 핵심은 재생 에너지이고 특히 태양광이다. 단기 감축 목표와 산업 경쟁력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태양광 중심의 전력 구조 전환을 서두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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