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전기를 옮길 것인가, 산업을 옮길 것인가
본문
전력 정책이 아니라 국토 정책의 문제다.
최근 논의되는 지역별 전기 요금과 LMP(위치 기반 한계 가격)은 요금 체계 개편이 아니라 공간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한국 전력망은 기술의 한계보다 사회적 한계에 먼저 도달했다. 더 이상 송전선은 계획표대로 지나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은 전기를 이동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발전소는 해안과 외곽에 세워졌고 소비는 수도권으로 집중됐다. 전력망은 그 간극을 메우는 보이지 않는 도로였다. 그러나 이 도로는 확장 비용이 아니라 갈등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송전선은 인허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책의 방향이 바뀐다. 전기를 보내는 대신 가격을 보낸다. 대통령은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은 싸게 쓰고 멀리서 끌어다 쓰는 지역은 더 부담해야 한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형평의 언어로 들리지만 실질은 입지의 언어다. 전기를 어디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서 쓰게 만들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가격에 거리를 넣는 순간 시장이 움직인다. 발전소 근처의 전기는 싸지고 멀리 소비하는 전기는 비싸진다. 이 변화는 요금 조정이 아니라 수요 이동이다. 전력망 확충이 아닌 소비 분산이 해법으로 등장한다. 전력정책의 대상이 발전소에서 산업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늘 등장하는 반론이 있다. 전기요금이 싸져도 기업은 지방으로 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말은 직관적으로 들리지만 실제 산업의 작동 방식과는 다르다. 기업은 지역을 선택하지 않는다. 비용 구조를 선택한다. 입지는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인재남방한계선' 같은 주장이 허구인 이유다.
한때 중국 시장에서 절대적 점유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기폭스바겐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당시 주요 본사 기능과 대규모 생산 거점은 북경이나 상해가 아니라 동북 지역의 장춘에 자리하고 있었다.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도시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경쟁력 있는 보상과 안정된 산업 기반이 형성되자 인재는 이동했다. 사람이 도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조건이 사람을 움직였다.
지금까지 기업이 수도권에 모인 이유도 동일하다. 인재 때문이 아니라 비용과 접근성 때문이다. 물류비·금융비·정보비가 낮은 곳으로 모였고 그 결과 인재가 따라왔다. 원인을 사람에서 찾으면 결론은 늘 어긋난다.
전력은 제조업과 데이터 산업에서 가장 큰 변동비 중 하나다. 가격이 일정하면 입지는 의미가 없지만 가격이 달라지면 구조가 바뀐다. 기업은 보조금에는 머뭇거리지만 고정비 변화에는 즉시 반응한다. 공장을 옮기지 않더라도 증설 위치와 신규 투자는 달라진다. 산업 이동은 이전이 아니라 신규 투자에서 시작된다.
“그래도 안 간다”는 말이 반복되는 이유는 과거 정책 경험 때문이다. 이전 정책은 인센티브 중심이었다. 지원금이 끝나면 효과도 끝났다. 그래서 가격 신호 정책까지 같은 범주로 오해한다. 그러나 가격 차이는 보조금이 아니라 조건이다. 조건은 협상 대상이 아니고 선택 기준이 된다.
해결 방법도 분명하다. 요금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낮은 가격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계통접속·전력계약·산업단지를 동시에 묶어야 효과가 생긴다. 이동은 선언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계약으로 일어난다.
결국 이 정책의 의미는 전력시장 개편보다 크다. 전력망을 확장하는 시대에서 전력지도를 재배치하는 시대로 들어간 것이다. 송전선이 산업을 따라가던 체계에서 산업이 전력을 따라가는 체계로 방향이 바뀐다.
질문은 하나로 남는다.
전기를 이동시킬 것인가, 산업을 이동시킬 것인가.
이제 답은 명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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