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언제까지 에너지 위기를 반복할 것인가
본문
중동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한국 경제는 같은 질문을 받는다. 에너지 안보는 안전한가. 그러나 최근 정부와 연구기관의 진단은 조금 달라졌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구조라는 지적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전기요금과 산업 비용이 동시에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 체계 자체가 외부 변수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연구기관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이슈브리프는 한국의 에너지 공급 구조가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하다고 분석한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 LNG의 18%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해협이 한 달만 봉쇄돼도 LNG 8항차와 원유 45항차의 도입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에너지 위기는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공급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투자의 방향 역시 같은 구조를 강화해 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 공적 금융이 화석연료 분야에 투입한 자금은 약 141조 원이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는 약 11조 원에 그쳤다. 화석연료 인프라에 집중된 투자 구조가 유지되면서 외화 유출과 전력 비용 상승, 전력 공기업의 재무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에너지 정책의 관성이 금융 구조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중동 긴장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에너지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체계를 구축해야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은 ‘지산지소’였다. 전력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과 산업 입지를 연결하고 전력 요금도 지역별 차등 구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이 뒤따랐다.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는 현실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의 공간 구조를 동시에 바꾸겠다는 접근이다.
세계 주요국은 이미 에너지 체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추진한 REPowerEU 정책을 통해 가스 수요를 크게 줄였다. 2022년 이후 약 700억㎥ 규모의 가스 수요를 절감하며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췄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 결과다.
중국의 속도는 더 빠르다. 중국은 2024년 한 해 동안 약 434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신규 설치했다. 이는 전 세계 신규 재생에너지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규모다. 태양광과 풍력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다. 에너지 공급 구조가 곧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전력 가격이 안정된 지역으로 산업이 이동하고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에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이 하나의 전략으로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선택의 시간이 길지 않다. 공적 금융의 투자 방향을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로 전환하고 화석연료 인프라 투자에 대한 리스크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더 많은 연료를 확보하는 문제가 아니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다. 익숙한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위기는 다시 반복된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