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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헤일메리

[오동진의 헤일메리] 구마모토 지진이 미토리카와 댐을 무너뜨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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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3시간 37분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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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지진>, 수력발전소가 안전할 수 있는가의 문제 그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원자력에너지의 안전성 문제를 보여줘

재난 회복력에 있어서는 태양광 에너지가 으뜸일 수 있어

 

이제는 이름도 거의 잊혀진 명우(라지만 미국 중심의 극보수주의자로 더 명성을 떨친) 찰턴 헤스턴 주연의 <대지진>은 어쩌면 지금 다시 봐야 할 영화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대지진의 여파로 수력발전 댐이 무너지는 얘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8일 일본 구마모토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있었고 구마모토현 주변에는 다수의 댐이 있다. 영화 <대지진>이 만들어진 1974년과 국내에서 개봉된 1976년(지금은 없어진 광화문의 국제극장, 세운상가에 아직 남아있는 허리우드 극장에서 동시 개봉)에는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라고 생각했지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 사람들은 이제 무슨 일이라도 다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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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미국 서부엔 산 안드레아스 단층이 위치한다. 지진이 심심치 않다. <대지진>의 오프닝 장면에서는 멀홀랜드 댐 내부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고 댐 내부 벽면에 조금씩 금이 가는 모습이 나온다. 캘리포니아 지진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을 미리 알게 된다. 연구원들은 이 사실을 상부에 알리려 애쓴다. 사람들을 소개(疏開)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청난 재앙 직전의 일상은 태풍의 눈처럼 평화롭고 소소하기 그지없다. 주인공 스튜어트(찰턴 헤스턴)는 자신이 결혼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는 건축가이고 돈 많은 건축업자(조지 케네디)의 딸 레미(에바 가드너)와 일종의 정략결혼을 했다. 레미는 오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여자이다. 스튜어트는 자신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미망인 데니스(주느비에브 뷔조)와 깊은 관계에 빠진다. 대지진이 일어난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늘 문제는 이 지진 이후 어떠한 일들이 따라오느냐이다. 2011년 3월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가장 무서웠던 것이 쓰나미였다. 1974년 영화 <대지진>도 지진 이후 가장 무서운 것으로 ‘물의 재난’을 그려낸다. 지진이 댐을 붕괴시키고 엄청난 물이 방류되는 대사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대지진>은 안전하다고 생각한 수력 댐이 무너지는 모습 때문에 당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지진이 나면 댐이 무너지는구나, 라는 현실감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댐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지진이 나면, 대량의 인명 피해는 ‘물난리’가 제1 원인이 될 때가 많다. <대지진>에서 주인공들은 처음에 지하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멀홀랜드 댐이 무너지고 인공 저수지인 레이크 할리우드의 물이 도시로 넘쳐 흘러들어 오면서 지하 주차장은 가장 위험한 곳이 된다. 스튜어트의 여자 데니스는 살아남지만, 급류에 휩싸인 아내 레미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든 스튜어트는 아내와 함께 살아남지 못한다. (‘TMI’겠지만 이 결말은 사람들에게 의아함을 줬는데 굳이 주인공이 왜 그래야 했느냐는 것 때문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스튜어트가 진짜 사랑하는 여자 데니스와 살아남고 레미만 죽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보수적인 찰턴 헤스턴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려 지금의 스토리 대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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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브리태니카


CG와 VFX(시각효과), 특수효과, AI 기술이 전혀 없던 시대에 나온 <대지진>은 오로지 미니어처와 대형 세트 구조에 의지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1975년 열린 제4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 영화에 시각효과 부문 특별공로상을 시상했다.

 

<대지진>은 환경 웹진 ‘솔라타임즈’ 관점으로 본다면 수력발전 에너지가 갖는 태생적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영화일 수 있다. 실제로 일본 구마모토현에서의 강진은 워낙 지진 사태에 준비가 철저한 일본 사회가 아니었다면 영화 <대지진> 같은 아찔한 순간을 겪게 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구마모토현에는 미토리카와 댐과 제1, 제2, 제3 수력발전소가 있으며 철저하게 준비된 내진설계 덕에 이번 지진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강력한 지진이 오면(동일본대지진처럼 규모 9대) 그때도 안전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댐의 붕괴와 함께 대량의 물이 방류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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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지진으로 무너진 구마모토성 경내 건물. 여전히 복구 중이다. 


수력발전 댐에서 발생하는 문제로부터는 어떡하든 대피한다고 치자. 가공할 공포는 원전 사고에서 나온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사람들은 현재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두려움을 일상으로 갖게 됐다. 원자력이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에너지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그 피해의 범위가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통해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도 내진에는 견뎌냈다. 무너지지 않았다. 문제는 전력이다. 원전에서는 냉각장치가 가장 중요하고 이건 전기가 돌리는 것인데 쓰나미가 전기 공급을 멈추게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원자로 내부에서 핵연료가 녹는 이른바 ‘멜트다운’과 녹아내린 핵연료가 원자로 압력용기를 뚫고 나간 ‘멜트스루’까지 일어났고 수소 가스가 누출됐으며 이 일련의 과정 탓에 폭발이 일어났다. 결국 발전소 외벽이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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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환경아카이브풀숲


이 모습을 전 세계 사람들은 위성 생중계로 낱낱이 목격하게 됐다. 사람들은 원자력과 핵폭탄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늘 1945년 8월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생각한다. 그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로 당연히 대규모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해수가 다 오염됐고 반경 40~60km까지 대기가 오염됐다.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 사태에 비하면 피해 규모가 1/10 수준이라고들 하지만 방사성 물질은 방사성 물질이다. 한국에서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먹을 수 있네 없네, 하는 치졸한 논쟁 끝에 한 정치인은 수조 물을 직접 떠먹는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결국 정권도 붕괴하고 해당 정치인의 정치 인생도 마감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일본대지진과 그로부터 이어진 원전 붕괴를 다룬 일본 영화로 ‘그나마’ 치밀한 것은 넷플릭스 기획의 8부작 드라마 <더 데이스>(2023)이다. 일본은 재난 영화 제작에 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재난 영화는 블록버스터이어야 하고 블록버스터는 메이저 영화사(토호나 토에이, 쇼치쿠, 카도카와 등)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메이저 영화사의 제작 원칙 중 하나는 일본 관료사회에 대한 비판은 삼간다는 것이다. 일종의 ‘입틀막’ 장치로 재난 영화가 피할 수 없는 사회정치적 비판을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일본 침몰> 같은 대형영화가 진정한 ‘망작’이었던 이유이다. (이 글과 관련은 없지만, 심은경 주연의 일본 영화 <신문기자>도 아베 내각의 실정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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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넷플릭스


<더 데이스>도 훌륭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다만 당시의 간 나오토 내각의 기회주의, 민간회사인 도쿄전력의 자사 이기주의, 일본 관료사회의 대책 없는 무능함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소장 요시다 마사로(야쿠쇼 코지)의 분투가 인상적이었던 드라마였다. 그는 일본인답지 않게 부당한 관료주의에 맞섰으며 때론 정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항명하는 모습을 보인다. 드라마가 치중하는 소영웅주의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요시다 마사로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실명 그대로 나오는 인물이어서 현실감을 준다. (간 나오토 총리도 아즈마 신지란 이름으로 대체됐다) 드라마 <더 데이스>는 이후 작성 보고된 ‘요시다 조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원전 사고를 그린 한국 영화로는 <판도라>(2016)가 있다. 부산 기장에 있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모티프가 됐다. 고리 원전은 한국 원전 1호기로 박정희 시대 때인 1971년에 착공을 시작해 1978년 가동을 시작했던 원자로였다. 약 40년간 가동되면서 늘 위험성이 제기돼 왔고 그런 지적이 영화 <판도라>로 수렴됐지만, 영화가 논의를 가속화 했다기보다는 정부 주체의 변화로 문재인 시대인 2017년 폐쇄가 결정됐고 2026년 올해 3월부터 해체가 시작돼 2037년에는 완전히 사라질 예정이다. <판도라>는 규모 6.1의 강진이 일어나고(이 영화 개봉을 앞둔 2016년 9월 실제로 경주 대지진이 일어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똑같은 경로로 사태가 벌어진다. 원자로가 녹고,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원전이 붕괴할 위기에 놓인다. 영화 <판도라>는 이 재앙의 외연보다는 재앙에 맞서는 인간의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누군가 방사성 물질이 가득 차 있는 지하 탱크로 직접 들어가 입구를 콘크리트로 밀폐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일종의 자살특공대 일이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눈물을 뿌린다. 감독 박정우가 만들었고 김남길이 주연을 맡았던 <판도라>는 458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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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지진과 그에 따른 재앙을 그린 영화가 사람들 머리에 심어주는 기억은 수력발전 댐이든 원자력발전소든 백 퍼센트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에너지원을 찾아야 하고 재생 에너지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지진은 치명적인 요소이다. ‘솔라타임즈’의 슬로건이 다시 떠올려진다.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 남았다.’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는 ‘발전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재난 회복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두 가지 면에서 태양광 에너지 만한 것이 없다. 일본 구마모토 지진으로 유추해본 영화 속 이야기들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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