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헤일메리] 오죽하면 에어컨 영화까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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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화 <천사의 아이들>에서 보이는 눈물겨운 에어컨 투쟁기
2023년에는 에어컨만 보여주는 <90분간의 에어컨 가동> 영화도 나와
에어컨 보급은 결국 계급의 문제
<미국에서, In America>라는 버젓한 제목을 두고 굳이 <천사의 아이들>로 바꾼 그 심오한 뜻은 짐작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이 영화는 아일랜드 감독 짐 쉐리던의 자전적인 미국 이민사이다. 이 영화가 나오고(2002) 한국에 소개될 당시(2003) 한국의 극장가 및 비디오 업계 풍경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분위기가 작동했을 것이다. 아마 크리스마스 앞둔 시점이었던 모양이다.

사진 출처 : Daum 영화
<천사의 아이들>은 눈물겨운 내용의 작품이다. 에어컨 때문이다. 배우 지망생 조니 설리반(패디 콘시딘)은 밤에는 택시 운전사로 일하면서 낮에는 연기 오디션을 다니지만, 배역을 따내지 못한다. 아내인 새라(사만다 모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새라는 원래 아일랜드에서는 교사였다. 둘에게는 크리스티와 아리엘이라는 딸 둘(새라 볼거, 엠마 볼거)이 있다. 이들 가족이 미국 뉴욕으로 온 것은 표면상으로는 아들이 죽었고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들이 뉴욕의 월세방 아파트로 옮긴 1980년대 초의 아일랜드는 경제적으로 파탄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와 아리엘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 <E.T.>를 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1982년 영화다) 실업률이 치솟았고 북아일랜드 무장투쟁 사태는 여전히 불안한 형국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니 가족은 짐을 싼 셈이다. 무엇보다, 그리고 어쨌든, ‘아메리칸 드림’을 바란 것이다.
그러나 뉴욕에 정착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폭염 때문이다. 지금이야 뉴욕, 하면 여름엔 폭염, 겨울엔 혹한으로 유명한 도시가 됐고 에어컨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도시가 됐지만 1980년대의 뉴욕은 지구온난화가 본격화되기 직전이었다. 선풍기 정도로 견딜 수 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조니 가족이 온 해는 뉴욕이 이상 기온으로 온도가 치솟았던 때이다. 아들을 잃고 종종 우울증에 시달리는 새라는 한편으로는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좁은 아파트의 공간에서 폐소공포증까지 겪는다. 착한 남편 조니는 어느 날 허름한 동네를 찾아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중고 에어컨을 거저나 마찬가지다 싶은 값에 사 온다. 러닝 바람의 조니는 무거운 에어컨을 직접 들고 땡볕 속에서 길을 건너 계단을 오른다. 조니의 몸은 땀범벅이 된다. 아이들은 옆에서 그런 아빠를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래도 조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는다. 이제 가족이 시원하게 지낼 수 있어! 이윽고 조니는 에어컨을 창틀에 설치한 후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스위치를 넣는다. 하지만 이 고물 장치는 찬 바람을 내보내지 않는다. 플러그의 전압 장치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20V와 110V의 문제) 조니는 실망한다. 가장으로서 수치심을 느낀다. 조니 역시 아일랜드 남자 특유의 강한 책임감을 보인다. 아내 새라와 아이 둘은 그런 그를 달래려 애쓴다. 에어컨은 나중에 아래층 남자 마테오(자이먼 운수)의 도움으로 작동된다. 하루하루 고단하고 고된 여름의 삶에서 조니 부부는 그제야 소소한 행복을 얻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계급의 문제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이 비행기를 탈 때 어느 자리에 앉느냐(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와 바로 에어컨이 있느냐 없느냐일 때다. 에어컨 선진국은 한국 미국 일본 등이다. 보급률이 90% 이상이다. 선진국에 해당함에도 EU 국가의 상당수는 보급률이 20%대에 지나지 않는다. 건축물들이 길게는 수백 년까지 된 것들인 관계로 에어컨을 장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섭씨 43도까지 치솟았던 이번 파리의 여름은 사람들, 특히 노인들과 유아들 다수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브라질의 에어컨 보급률도 20% 미만이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는 에어컨이 드물다. 보급률이 10% 미만 대이다. 아프리카는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에선 폭염이 곧바로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에어컨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지구를 더 덥게 만든다. 더위의 계급화, 에어컨의 계급주의는 이미 노골화된 지 오래다.
지구를 살린답시고 에어컨 사용을 모두 강제로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든, 일단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할 일이다. 39도~43도의 더위에서 인간의 몸은 살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 2023년 7월 뉴욕 맨해튼의 한 예술극장에서는 <90분간의 에어컨 가동, 90 Minutes of Air Conditioning>이라는 실험영화가 상영됐다. 스크린에는 오로지 에어컨이 찬 바람을 내뿜는 장면이 90분간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관객들이 그 장면을 보다 나가는, 일종의 퍼포먼스 상영회였다. 뉴요커들로부터 큰 반향을 얻었다.
에어컨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과연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일까. 순기능은 사람들을 폭염의 공격으로부터 살리는 일이고 역기능은 지구온난화의 악순환을 가속화 하는 것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의 이정모 관장은 한 과학 전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상적인 언급을 했다. 요지는 유럽에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 이러다 다 죽는다, 였다. 그는 “언젠가 강연을 할 때 한 노인이 에어컨을 끄라며 화를 내더라”면서 “그분에게 집에 가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또 “환경보호를 위해 무조건 에어컨을 끄라고 할 일이 아니다. 폭염은 재난이고 이 재난에선 인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고효율 냉방이나 친환경 에너지 전력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효율 냉방의 정확한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유행인 인버터 에어컨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목표 온도에 도달하면 컴프레서 회전수를 낮춰서 천천히 작동하며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전력 소모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에어컨 기술이 발전했다는 측면보다 인간이 스스로 환경보호와 환경파괴의 이중구조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있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자연도 그러할 것이다. 인버터 에어컨은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 신이 준 작은 선물 같은 기계장치이다.
에어컨의 계급주의를 타파하는 것도 역시 태양광 패널을 쓰는 것이다. 가장 뜨거울 때 에어컨은 필수이다. 이때 전력 사용이 급증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뜨거울 때 태양광 패널은 전기를 모을 수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하는 미니 태양광 패널(350W 패널 기준)이 하루 평균 3.2 시간 발전 시 한 달 전기 생산량은 약 30~45kWh 정도다. 20평형 인버터 에어컨을 26도로 맞추어 사용할 때의 한 달 소비 전력량은 150~300kWh 정도다. 상당량이 해결된다. 만약에 국가 차원에서 태양광 패널 설치를 지원하고 인버터 에어컨 공급 또한 지원하면(물론 둘 다 무상 지원이면 좋겠으나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는 시원하게 살고, 누구는 푹푹 찌면서 살거나, 누구는 폭염으로 죽고 누구는 쾌적하게 생존하는 계급의 차이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매번 구호처럼 반복하는 얘기지만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 남았다.
짐 쉐리던의 <천사의 아이들>에서도 에어컨 바람이 서민 아파트 전체를 살아가게 만든다. AIDS로 죽어 가던 아래층 남자 마테오는 조니 가족에게 큰 선물을 남긴다. 사람을 구하는 건 사랑이다. 더위를 구하는 건 에어컨이다. 모두에게 에어컨을! 아폴론 신이시여. 태양에너지는 주시되 지구는 좀 시원해지게 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오죽하면 <90분간의 에어컨 가동>이라는 영화까지 나오겠는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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