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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헤일메리

[오동진의 헤일메리] ‘하드 레인’의 호우, ‘호우시절’의 호우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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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2026-08-20 16: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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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지성 집중호우는 영화 속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나

지구온난화가 물 폭탄 호우를 만드는 기후변화의 주범

태양광 에너지의 구조적 한계, 미리부터 준비해서 극복해야

 

근 30년 전인 1998년 8월, 지금은 없어진 종로3가의 서울(시네마)극장에서는 할리우드 재난영화 <하드 레인>이 개봉됐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해 (삼성영상사업단, 대우시네마, 현대 금강기획, SK 영화사업본부) 몇 개의 전통 자본 영화사들(동아수출공사, 합동영화사, 태흥영화사)과 각축을 벌이던 때였다. <하드 레인>은 후자에 해당하는 동아수출공사가 수입한 영화였다. 동아수출공사는 신흥회사였던 삼성영상사업단(이후 CJ엔터테인먼트)이 그 전 해인 1997년 <제 5원소>를 53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45억 원)에 수입하는 등 돈을 쏟아부으며 시장의 주도권을 쥐려 하자 이에 질세라 위험한 베팅을 한다. <하드 레인>을 380만 달러에 수입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IMF가 터졌고 환율은 1년 사이에 달러당 850원에서 1,600원까지 치솟았다. 동아수출공사는 원래 우리 돈 30억 원을 생각하고 샀지만 결국 60억 원 가까이 값을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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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문제는 환율이 아니었다. 홍수였다. 1998년에는 유달리 폭우가 쏟아졌다. 5월의 기습호우로 서울 북부의 태릉이 물에 잠기고 중랑천이 넘쳐 동부간선도로의 통행이 중단됐다. 본격적인 물난리는 8월이었다. 8월 4일부터 8일까지 서울과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8일 하루 사이 서울에 내린 비가 332.8mm였다. 8월 한 달간 서울에는 1,300mm 가까이 비가 내렸다. 그런데 이 시기 극장에 걸린 영화 <하드 레인>이 바로 홍수 영화였다. 바깥에서는 물난리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그 비를 뚫고 스크린에서까지 물 폭탄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올 리는 만무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이 영화 개봉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쏟아 냈다.

 

<하드 레인>은 미국 인디애나주 헌팅버그라는 소도시(실재하는 곳이다)에 대홍수가 나는 이야기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니 댐이 견디지를 못한다. 범람하기 전에 수문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도시는 댐이 방류하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교도소 문도 열린다. 보안관들은 은행의 돈을 따로 보관하려 한다. 그게 300만 달러이다. 도시가 물에 잠긴 와중에 은행강도단과 지역 보안관이 300만 달러를 두고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가 <하드 레인>의 기둥 줄거리이다. 모건 프리먼이 빌런으로 나와 화제를 모았다. 모건 프리먼 상대역이 크리스천 슬레이터였다. 여배우 미니 드라이버도 나왔다. 30년 전에는 톱스타 캐스팅 영화였다. 그러나 평점은 할리우드에서조차 망작 수준이었다. 한국에서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치도곤을 당했다. BEP는 서울 60만 명, 전국 150만 명 수준에 부가 판권 수익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총관객 수는 10만 명 선에 그쳤다. 당시 영화 티켓은 6천 원이었다. 동아수출공사는 <하드 레인> 흥행 실패로 크게 흔들린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취권>과 <다이 하드> 시리즈로 1980년대에 큰돈을 번 영화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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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영화 <하드 레인>과는 달리 지금의 한국은 폭우보다는 가뭄의 나라가 됐다. 지난 5년간 태풍도 거의 빗겨 가고 있다. 나라가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다가도 종종 국지적으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그리고 이게 더 큰 문제가 된다. 아차 방심하는 사이에 사상자가 나고 피해가 속출한다. 최근 거제도에 쏟아진 호우가 그런 식이었다. 거제도에는 연휴가 시작된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968mm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 시간당 강수량이 124.5mm였다. 산사태로 터널이 막히고 아파트에 토사가 쏟아져 들어 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졌지만, 이번 거제도 물난리는 2011년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일어나고 부촌인 서초동의 한 고급 아파트에 토사가 덮쳐 16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터진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사태로 기록된다. TV 보도로만 봐도 거제도는 아비규환이었다.

 

결국 모든 ‘원흉’은 지구온난화이다. 따듯해진 바다는 수증기를 계속 위로 올리고 대기는 마치 스펀지처럼 그 물을 입에 물고 특정 지역에 머무르다 한꺼번에 뱉어내는 식의 극한 호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상승 기류에 의해 올라가 찬 공기와 만나 냉각되어 매우 좁고 강한 비구름대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구름이 이동하며 비를 뿌렸으나 지금은 한 군데에서 모든 걸 다 쏟아붓는 형국이다. 결국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하고 화석연료를 천연연료로 대체해야 한다. 태양광과 수력, 풍력이 중요해지는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태양광의 경우만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기후 조건에 취약한 측면이 많고 결국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극한의 국지성 호우는 태양광 발전에 치명적이다. 안 그래도 밤에는 발전이 불가하고 흐린 날에는 출력이 떨어지는 등 발전량이 일정치 않은데, 기후 이변에 따라 집중호우가 이어지면 전력 부족 현상이 잦아진다. 전력 사용 안정화를 위해 태양광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 시스템의 구축(ESS)이 필수적인데, 영리한 인류는 이미 그 기술의 발전을 상당 부분 이루어 온 상태다. 리튬과 나트륨, 바나듐을 원료로 하는 배터리 등이 개발됐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워낙 전문적이라 이 글에서는 거론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태양광 발전소가 호우나 산사태 등 자연 재난에 취약하다는 점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래된 발전소의 경우 안전 관리에 유의해야 하고, 산기슭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도 입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안전 점검 규정이 강화되었고, 2018년 이후 임야의 신규 태양광 발전소 허가는 거의 중단된 상태다. 대체 에너지를 모두 태양광 에너지로만 전환시키겠다는 것도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 수력, 심지어 엄격하게 통제되고 운영되는 원전까지 모든 에너지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되 그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의 블록버스터 망작(제작비 300억 원) <대홍수>에서는 물난리가 나지만 그게 폭우 때문은 아니다. 그래서 더 욕을 먹었다. 영화 속 인물들조차 잘 모르는데, 지구 남반구에 소행성이 충돌했고 그 여파로 남극의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바람에 한국의 서울, 그것도 도심지 아파트에 그 물이 밀려 들어와 건물의 반 높이까지 잠기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살인적인 물 폭탄이 쏟아지는 ‘현실의 비현실성(현실에서 벌어지지만 마치 영화 같은 일)’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소행성 충돌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영화 <대홍수>는 대규모 수조 세트에서의 고난도 촬영 및 고도의 VFX 활용 등으로 시각적 완성도에 열을 쏟았음에도 관객(시청자)들에게 개연성이 없다며 두들겨 맞았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김대우가 시선을 조금 현실로 돌려 대홍수의 배경을 집중호우로 설정했다면 훨씬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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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허진호가 만든 수작 중 하나가 <호우시절>이다. 비가 내리는 시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는 의미이다. 정우성과 중국 여배우 가오 위엔위엔(고원원)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국제 커플인 동하와 메이는 미국 유학 시절 친구 사이다. 둘은 그때 ‘썸’을 탔고 졸업 후 각자의 나라인 한국과 중국으로 돌아갔다. 헤어진 삶을 살아가던 두 남녀는 청두에서 재회한다. 둘은 다시 끌린다. 그러나 둘 사이를 큰 재난 사건이 가로막고 있다. 쓰촨성 대지진의 트라우마이다. 이 사태로 8만 명 가까이 죽고 40만 명 가까이가 실종됐다. 이때 주인공 메이의 남편도 죽은 것으로 나온다. 동하는 쓰촨성 재건에 필요한 중장비를 팔기 위해 중국에 온 회사의 간부이다. 메이는 죽은 남편 때문에 동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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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둘이 만날 때는 종종 비가 내린다. 슬픔과 설렘이 교차하는 메이의 마음과 같은 비가 내린다. <호우시절>의 호우는 <하드 레인>의 호우와는 다른 호우이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이다. 태양광 에너지 배터리도 더욱더 고도화시켜야 한다. 지구는 결국 멸망할 것이지만 유예기간은 늘려갈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이 남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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