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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헤일메리] “옛날엔, 산불 특공대 영화가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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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13시간 42분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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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산불 얘기 그린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

조셉 코신스키 감독 2017년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테일러 쉐리던 감독 2021년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한국에서 산불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재난 서사가 강하기 때문

 

이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고, 길거리에 낙엽들이 뒹굴 것이다. 어김없이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이 어느 라디오 DJ 입을 통해 진부한 멘트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80~90년대 인기 팝뮤직 DJ였던 황인용은 자신이 맡은 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서 이맘때면 늘 이브 몽탕의 <고엽(Autumn Leaves)>을 틀곤 했다. 모두 다 ‘공룡시대’의 얘기다. 이제는 그런 낭만이 사라졌다.

 

사람이 변해서가 아니라 환경이 변해서이다. 기후변화로 잦은 산불이 일어나는 만큼 시몬에게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는 따위의 질문을 던질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여름 내내 폭염이 지속되다가 이번엔 때아닌 가을과 겨울까지 가뭄이 지속되고 대기가 바싹 마르면서 가을에 쌓인 낙엽은 대체로 이듬해 3, 4월에 대형산불을 일으키는 불쏘시개로 변한다. 그 전인 가을, 성묘를 앞두고 산불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작은 사람의 실수다. 그러나 곧 크게 번진다. (며칠 전인 9월 12일과 14일에 발생한 경북 영천 산불) 요즘은 작은 불씨로 끝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대형산불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되곤 한다. (2025년 3월 경북 의성 등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산불, 2022년 3월 울진 삼척 산불,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이 증가하는 것은 상당 부분 기후변화 때문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이 기후변화는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대폭 줄이거나 멈추지 않으면 이상기온과 가뭄이 반복될 것이고 결국 작은 불씨가 대형산불로 번지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한국에서 산불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산불을 영웅서사로 엮을 만큼 대중들의 마음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불 화재는 엄청난 재난으로 받아들여진다. 재난을 영웅담의 인간드라마로 만드는 건 대중 정서상 자칫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산불 영화는 한국에서 영화제작의 기피 스토리 넘버 원, 투가 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 수 있다. 바다나 폭포 씬의 경우, 대형 수조 세트를 만들어서라도 찍을 수 있지만 화마는 그게 힘들다. 대부분 CG와 특수효과로 그려 내야 하는데 그 경우 제작비는 천문학적인 수치가 된다. 일부는 산 하나에 실제로 불을 내곤 하는데 법적 허가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영화의 리얼리티도 떨어진다. 대형산불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은 여전히 할리우드밖에 없다. 막대한 돈이 있고 거대한 땅이 있기 때문이다.

 

조셉 코신스키가 만든 2017년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는 소방 특공대 이야기를 그린다. 미국은 거대한 대륙이고 실제로 산불이 번지면 그 재난의 수준이 막대하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마다 소방 특공대가 조직돼 있다.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해 내면서 불길을 잡을 수 있도록 강한 훈련을 통해 길러진 요원들이다. 이들 조직을 ‘핫샷’이라고 부른다. <온리 더 브레이브>는 애리조나주 프레스콧시의 핫샷, 그래서 영화에서는 프레스콧 핫샷, 혹은 지역의 유명 바위산 이름을 딴 그래닛마운틴 핫샷이라 불리는 산불 특공대 팀의 이야기다. 애리조나주는 미 대륙 서남부에 있고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유타, 뉴멕시코 같은 주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토록 유명한 그랜드 캐니언이 여기에 있다. 프레스콧시 인근 야넬 힐 지역에서 살인적인 산불이 일어난다.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는 그 실화를 그린 내용이다. 그렇고 그런 영웅담이 아니다. 감동 스토리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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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야넬 힐 산불은 벼락 때문에 생긴다. 평범한 것처럼 보였던 불길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산불 진화에 투입됐던 그래닛마운틴 핫샷 대원 20명 중 19명은 방화 텐트를 뒤집어쓰고 땅에 엎드린 채 악전고투하지만, 전원이 사망한다.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인 브랜든(마일즈 텔러)이다. 브랜든은 일종의 OP이다. 관측소 감시원 역할이다. 불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대원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이며 대체로 대원 중 막내가 이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지만 믿음과 신뢰를 갖춘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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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영화의 상당 부분은 브랜든이 조직원들에게 신뢰를 얻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부분은 다소 상투적이다. 브랜든은 약물 중독자였고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여자친구 나탈리(나탈리 홀)가 딸을 낳고 아이의 접견을 제한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가 딸아이를 보려면 건전해져야 한다. 건전해지려면 그에 마땅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가 핫샷 공모를 보고 지원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약물 중독자가 고된 훈련을 이겨나가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원들은 그를 멀리한다. 하지만 대장인 에릭(조시 브롤린)이 그가 끝까지 정식 대원이 될 수 있도록 독려한다. 브랜든은 곧 대원들에게 인정받는 일원이 된다. 그리고 야넬 힐 산불의 비극이 벌어진다.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이유의 재난 같지만(벼락이 점화시키는 등) 유독 최근 10~20년 들어 영화에서처럼 대형산불로 자주 번지는 것은 기후변화에 원인이 있다. 뜨겁게 달궈진 지면은 숲을 바싹 마른 장작과 같이 변하게 한다. 불은 아차 하는 순간 대형산불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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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기후변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2021) 역시 대형산불의 공포를 다룬 작품이다. 공수 소방대원인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명민하고 용감한 여성 대원이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화마에 갇힌 아이 셋을 구하지 못한다. 한나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감시탑 요원이 돼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이어 간다. 한나는 매일 망원경으로 숲을 보고 관찰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범죄조직의 잔혹한 킬러(니콜라스 홀트)에게 쫓기고 있는 소년 코너(핀 리틀)를 포착한다. 킬러(들)는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하고자 산에 불을 지른다. 한나는 두 가지 장애, 곧 화마와 킬러를 뚫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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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에서 인상적인 것은 불타는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다. 한나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그녀에게 일상 용품을 가져다준다) 동료 에단(존 번탈)은 만삭의 아내 앨리슨(메디나 생고르)과 감시탑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산불에 갇히기보다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대기에 갇힌다. 이들에게는 산소마스크가 하나밖에 없다. 에단은 총상을 입은 채 앨리슨과 뱃속 태아를 살리기 위해 마스크를 그녀에게 씌우고 자신은 질식사한다. 산불로 인해 대규모로 퍼지는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이 기후변화가 다시 잦은 산불로 이어진다. 대기의 허파 역할을 하는 숲의 나무들이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이 아니라 탄소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된다. 나무가 탄소를 다시 흡수하려면 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산불과 기후변화가 만들어 내는 악순환이다.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는 상대가 결코 자연이 아니라 잘못된 인간들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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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um 영화

 

고엽이 ‘이브 몽탕의 고엽’으로서 그 로맨틱한 감성의 대상으로 남아 있으려면 화근의 불쏘시개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기후변화의 요인들을 대폭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의 달성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화석연료의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다. 신재생에너지는 결국 태양광, 풍력, 수력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오늘의 결론 역시 태양과 바람과 물이다. 태양신 아폴론은 산불이라는 벌을 내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존을 50억 년 동안 보장해 주기도 한다. 사람 하기에 달렸다. 100년쯤 지난 후 누군가가, 옛날에 말이야, <온리 더 브레이브>와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같은 영화가 있었대, 산불 특공대 얘기래, 하면서 신기해하는 날이 올까. 그럴 수 있을까. 근데 그러면 좋지 않을까.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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