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헤일메리] 개도 포르셰를 타고 다니는 동네, 개포동의 환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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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계의 석학(하버드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을 연구했다) 테렌스 맬릭 감독은 2011년 <트리 오브 라이프>를 내놓는다. 브래드 피트와 숀 펜, 제시카 채스테인 등 스타급 배우들이 나온 작품이었고 비교적 '시간이 잘 가지 않는' 영화였다. 철학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내용이었다는 얘기이다. 성공한 50대 건축가 잭(숀 펜)은 텍사스 휴스턴에서 산다. 그는 요즘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중이다. 잭은 사랑했던 동생의 기일이 되자 자신의 1950년대 유년기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성공과 규율을 강제했던 엄격한 아버지(브래드 피트)와 자상한 어머니(제시카 채스테인) 사이에서 그는 자랐다. 동생이 19살 때 전쟁에 나가서(라지만 확실치는 않다) 죽었다. 그때 가족 모두는 크게 고통받았다. 잭은 유년기를 떠올릴 때마다 집 앞에 있었던 오래된 떡갈나무를 생각한다. 인생은 나무와 같아서 아버지와도 같지만 대체로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딱딱했던 부성과 부드러웠던 모성이 충돌할 때마다 그는 나무를 올려다보곤 했다. 그에게 떡갈나무에 대한 기억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떡갈나무는 잭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잭보다 먼저 성장했고, 앞으로도 잭보다 더 살아가게 될 것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극 중 인물들의 대화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다이얼로그를 전면 삭제한 대신 테렌스 맬릭 감독은 이를 인물 간 독백으로 모두 교체했다. 영화는 전편을 보이스오버 독백(Voice-over Monologue)으로 채우고 있으며 이는 주인공 잭의 절박한 내면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지루한 영화는 아니지만, 러닝타임의 흐름, 호흡과 속도가 느린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다. 인물 간 대화를 없앤다고 해도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트리 오브 라이프>를 떠올릴 때마다 앙각으로 그려지는 떡갈나무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지난 8월 중순에 개봉했던 영화 <콘크리트 녹색섬>도 나무에 대한 얘기다.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도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테렌스 맬릭 같은 거장의 실험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 역시 <트리 오브 라이프>처럼 기억에 관한 얘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다. 영화 속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모두 한 동네 얘기를 한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유년기, 혹은 과거를 소환시킨다. 그들이 살던 곳은 서울 강남 개포동의 대규모 주공아파트 단지였다.
개포동은 옛날엔 개도 포기한 동네였지만 지금은 개도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는 동네가 된 곳이다. 주공아파트는 서민 아파트였다. 그러나 재개발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곳이 됐고 한국 자본주의의 욕망을 대표하는 곳이 됐다. 부동한 투기의 대명사가 됐던 곳이다. 대규모 재개발은 두 가지를 없앤다. 하나는 인간들의 기억이고 또 하나는 자연이다. <콘크리트 녹색섬>에서 없어진 자연은 벌목을 통해서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가까이 된 거목들이 무분별하게 가차 없이 잘려 나갔다. 숲은 사라지고 자연은 없어졌다. 영화는 기억과 추억의 실종이 나무의 '학살'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려 애쓴다. 마치 <트리 오브 라이프>의 부성과 모성이라는 두 가지 길과 같은 얘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콘크리트 녹샘섬>은 환경영화이고 궁극적으로는 나무의 탄소 흡수력에 대한 얘기다. 탄소 중립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대규모 재개발이 가져오는 환경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 영화다. 아파트를 개발할 때 묘목을 다시 심기는 하지만 이들이 나무가 되고 숲의 꼴을 갖추기까지 40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래된 거목들은 몸집 안에 엄청난 양의 탄소를 머금고 있다. 이들이 벌목되는 과정에서 탄소가 대량으로 방출된다. <콘크리트 녹색섬>이 2025년 6월에 열린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타고 제20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인더스트리(영화제 마켓) 초이스상,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옥랑문화상을 탄 것은 이처럼 환경보호에 대한 의미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재개발, 뉴타운 조성 과정에서 숲과 나무를 조화롭게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각성을 하게 만든다. 다만 그것이 말이나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만든다. 원칙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벌목 이전에 그에 대한 필요성과 타당성을 진단할 환경 전문가들의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조례화 하기로 약속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콘크리트 녹색섬>에서 잘려 나가는 개포동 나무들은 메타세쿼이아다. 이 수종은 다른 나무보다 탄소 흡수력이 거의 두 배 가깝게 높다고 알려져 있다. 잘 자란 메타세쿼이아는 연간 69.6kg의 탄소를 흡수한다. 게다가 광합성 능력이 좋고 생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 도시 환경에 이만한 나무도 없다. 그런 나무들이 구분 없이 무차별하게 벌목되는 것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균형의 문제다. 아파트 재개발이라는 부동산 욕망은 한도 끝도 없다. 쉽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 사회주의 이론을 ‘흠모’한다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보유한 땅이나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 한몫을 챙기는 데에 여념이 없다. 거리낌도 없다. 그렇다고 탓할 일도 아니고 욕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재개발이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계 학살)’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도시 재개발과 환경보호라는 양극단은 중간지대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전문가가 개입하고 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녹색섬>이 줄곧 강조하는 이야기다.
태양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나무를 키운다. 아폴론은 나무를 애지중지한다. 그러나 인간들이 이를 베어 낸다. 태양은 주고 인간은 뺏는다. 태양은 이에 대해 지구 온난화 등의 기후변화로 응징한다. 사람은 태양에 맞서서는 안 된다. 순응해야 한다.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이다. 50억 년 동안 괴롭힘을 당할 것인가, 보복의 순환고리를 끊고 태양의 힘과 에너지로 살아갈 것인가. 판단하고 실천할 때가 왔다. 온 지 이미 한참이나 됐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의미 있는 다큐다. 이런 영화일수록 지루한 편이다. 환경 운동가들에게 좋은 교재가 된다. 공교육 과정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보여져야 할 영화이다. 환경은 교육이다. 영화만 한 것이 없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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