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헤일메리] 대통령과 환경운동가 여성의 사랑이 이룬 성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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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다룬 넷플릭스의 정치 다큐 <화이트하우스 이펙트>를 보고 있으면 엉뚱하게도 1995년 로브 라이너가 만든 멜로 영화 <대통령의 연인>이 떠오른다. 아니 엉뚱한 얘기가 아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아네트 베닝이 나왔던 <대통령의 연인>은 아버지 조지 부시 시절인 1989~1993년의 미국 환경정책의 혼란과 딜레마를 할리우드식 감성 드라마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감독 로브 라이너는 섬세하고 정교한 영화감독이다. 그가 허투루 로맨틱 드라마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브 라이너 부부는 2025년 12월 마약중독자였던 아들의 칼부림으로 사망했다) <대통령의 연인>에 나오는 앤드루 셰퍼드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과 환경운동가 시드니 웨이드(아네트 베닝)의 관계는 명백하게 다큐멘터리 <화이트하우스 이펙트>에서 대통령 조지 부시와 환경운동가 출신의 미국 EPA(환경보호청) 청장 윌리엄 케일 라일리 사이의 관계를 영화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사실 보수당 대통령과 환경운동가 출신의 각료(EPA는 내각 부처는 아니지만, 내각 급 지위가 부여된다)는 같이 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그건 로브 라이너 식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진 출처 : Rotten Tomatoes
현실의 남-남 정치 관계가 영화에서는 남녀 간 러브 정치 드라마로 변주됐다. 로브 라이너는 그렇게라도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한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셰퍼드 대통령은 재선 가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알면서도 연인인 시드니 웨이드가 원한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1988년 대비) 20% 감축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환경개발회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낮추는 데조차 합의하지 못한다. 미국 국내 경제 문제에의 타격을 우려했고 재선 이슈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조지 부시 정부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세계 각국 정상도 사실 내심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기후협약에 서명하긴 했지만 ‘목표 기한’을 정하지는 않았다. 조약은 상징적인 데에 그쳤다.
넷플릭스 다큐 <화이트하우스 이펙트>의 핵심 키 워드는 1984년 당시 테네시주 하원의원이었던 앨 고어(이후 부통령을 지낸 후 다큐 <불편한 진실>을 제작, 출연했다)의 인터뷰에 나온다. “이제 이 문제(온실효과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과학적 합의는 이루어졌고 첫 번째 효과가 느껴지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가 (새로운) 논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왔어요.” 앨 고어의 당시 이 인터뷰는, 환경문제란 결국 정책으로 반영되고 또 그 정책은 정치를 통해 구현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가를 암시한다. <화이트하우스 이펙트>는 미국의 환경정책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좌초됐으며 또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가를 고찰한다. 매우 뜻깊은 환경정책 역사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를 보고 있으면 환경정책에 왜 혼선이 생기고 엑손모빌 같은 석유 재벌의 로비가 정치를 혼탁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기후 위기가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 깨닫게 된다. 시작이 어땠는지를 캐다 보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한 방안을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미국의 환경정책을 선도적으로 부각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려 했던 대통령은 공화당의 부시였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정반대였다. 태양광 에너지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 앞장섰던 지미 카터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은(미국의 대통령은 국내 경제 현황과 국제 분쟁이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카터의 경우 이란 호메이니 혁명을 막지 못했고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인질 사태를 장기간 해결하지 못했다. 국내적으로는 치솟는 석유 가격을 통제하지 못했다) 마치 지금의 트럼프처럼 MAGA를 외친다. 레이건식으로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려면 각종 규제를 풀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였다. 이 일에 앞장선 것이 레이건이 임명한 부통령 조지 부시였다. 부시 가문은 텍사스 석유 재벌이다. 부시의 등장으로 미국의 석유 산업 특히 엑손모빌 같은 석유 부호들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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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윌리엄 라일리 전 미국 환경보호청(EPA) 청장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다큐는 그걸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조지 부시는 레이건에 이어 대통령이 된 후 환경문제에 대해 공화당 대통령답지 않게 진보적 태도를 취하려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EPA(환경보호청) 청장으로 환경운동가 출신인 윌리엄 케일 라일리를 파격적으로 등용한 것이다. 부시와 라일리의 우호적 관계는 대통령의 임기 끝까지 간다. 부시는 환경문제와 국내외 경제 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 다큐를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나 당연하게도 부시는 그 두 가지 문제 중 어느 쪽 하나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퇴임했다. 미국은 빌 클린턴 시대로 넘어갔다.
부시에게는 환경정책에 관한 한 양날의 검이 있었다는 게 이 다큐의 진술이다. 한쪽에는 라일리 환경보호청장 같은 다분히 진보적인 인물이 있었고 또 한쪽에는 존 수누누 같은 극히 이념적이고(보수주의) 정치적으로 강성인 비서실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에는 일명 수누누 원칙이 있었는데, 공약은 강하고 많게 하고 집권 후에는 적게 줄인다는 것이다. 존 수누누는 부시의 환경정책이 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봤고 그건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일 것이라 봤다. 부시는 두 인물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부시 본인으로서는 선의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정책이었으리라는 점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미국의 환경정책, 세계 환경문제는 부시의 우유부단함으로 후퇴했다.
석유 재벌 엑손모빌은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악화하는 시점을 특정하지 않고, 먼 미래라는 점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에 뒷돈을 댔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최초 격으로 제시한 기후학자 스티븐 슈나이더나 NASA의 연구원 제임스 핸슨 박사의 연구 결과는 기후 변화 문제가 과장됐거나 특정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는 어용학자들의 논리로부터 공격당했다. 모든 프로파간다의 최고 기술은 진실의 앞마당을 이런저런 수치, 이런저런 자료들로 어지럽히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해당 문제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게 해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엑손모빌이 어용학자들을 앞세워 저지른 짓들이다.
<화이트하우스 이펙트>는 기후 재앙에 대한 인류의 각성이 1988년부터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 준다. 1988년 여름 미국은 그야말로 불덩이였으며 48개 주에서 36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4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러나 하나도 더 좋아지지 않았다. 트럼프는 기후협약이 모두 사기라고 한다. 미국은 리우협약에 이어 파리협약에서도 탈퇴한 상태이다. <화이트하우스 이펙트>를 보고 있으면 환경문제 하나하나가 모두 정치 현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환경은 정치이며 정치는 환경이다.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된다.
실패한 대통령이었지만 지미 카터가 태양 빛을 흡수하는 태양광 패널을 둘러보는 장면이 나온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고민은 진작부터 시작된 것이다. 역시 실패한 대통령이었지만 조지 부시가 이 지구온난화 문제는 이데올로기나 정당 간 의견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연설도 인상적이다. 윌리엄 케일 라일리가 2019년에 다 늙은 모습으로 나와(1940년생) 힘겹게 인터뷰에 임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부시 대통령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미국 내에서도 초당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공화당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환경문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했을 것이라는 점이지요.”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에 실천적이면 정치가 복원될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태양광 에너지를 써야 한다. 태양의 수명은 50억 년 남았다.

사진 출처 : Daum 영화
<대통령의 연인>에서 셰퍼드 대통령은 홀아비이다. 아내와 사별했다. 시드니 웨이드는 리버럴리스트이다. 각자 살아가는 위치와 상황으로 볼 때 둘은 같이 하기 힘든 관계일 수 있지만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린다. 둘은 어느 날 공식 만찬 파티에서 같이 춤을 춘다. 여론과 세상은 난리가 난다. 그래서 둘은 결국 헤어진다. 그래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법안은 발의할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런 난리가 한번 났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체 연료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내년 여름 더위도 지긋지긋할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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