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헤일메리] 오일 폴리틱스에서 솔라 폴리틱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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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개건 감독의 2005년 작 <시리아나>
화석연료가 모든 국제 분쟁의 원인임을 보여 줘
석유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나누는 정치로 바꿔야
석유와 천연가스는 결국 전쟁을 일으킨다. 에너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에서도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영화 <듄 1, 2, 3>의 핵심 내용이다. 듄(사구,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아라키스 행성에는 스파이스가 풍부하지만, 이곳의 채굴권을 관리하기로 한 아트레이데스 공작 가문(오스카 아이작)은 하코넨 가문(스텔란 스카스카드)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멸문지화를 당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공작의 아들 폴(티모시 샬라메)은 아라키스의 사막에서 살아가는 유목민 프레맨들(하비에르 바르뎀, 젠데이아 등)을 이끌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미래의 스파이스는 지금의 석유이다. 프레맨들은 베두인, 곧 아랍인들이며 아트레이데스나 하코넨은 미-중 혹은 미-러의 관계이다.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인류는 굳이 ‘듄의 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절멸한다.

출처 : Daum 영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 할리우드에는 천재적인 각본가가 많다. 현존하는 3대 작가로 아론 소킨(시즌 드라마 <웨스트 윙>, <뉴스룸> 등), 폴 해기스(<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버지의 깃발> 등), 토니 길로이(‘제이슨 본’ 영화 시리즈 등)를 들 수 있다.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영화 <시리아나>(2005)의 감독 스티븐 개건도 앞의 세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 스릴러의 이야기판, 시나리오 구조 하나는 기막히게 잘 짜는 인물이다. 그가 각본을 쓴 영화들은 흥행이 은근히 잘 되기도 했는데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2000)나 <트래픽>(2000) 같은 작품은 골든 글로브에서 각본상을 타기까지 했다.

출처 : Daum 영화
영화 <시리아나>에서 ‘일’이 벌어지는 곳은 중동 지역 내 가상의 산유국이지만 명백하게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를 가리킨다. 영화에는 주요 캐릭터가 많지만 잘 들여다보면 결국 사건은 이 중동 산유국의 개혁파 왕세자 나시르(알렉산더 시디그) 때문에 벌어진다. 나시르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석유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 탈피, 자국의 경제 다각화와 민주화 개혁을 추진함과 동시에 양극화를 지양해 자국민 복지에 나설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서구의 경제 구조 도입을 서두르려 하기에 자문역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스위스에서 일하는 에너지 분석가 브라이언(맷 데이먼)이다. 브라이언은 나시르가 초대한 파티에 가족을 데리고 갔다가 아들이 사고로 사망한 후 그의 핵심 경제고문이 돼 중동에 남는다.

출처 : Daum 영화
일이 심상치 않게 되는 것은 천연가스 시추권 때문이다. 나시르의 선대 왕은 그간 친미적 외교 노선을 통해 미국의 거대 석유기업 코넥스와 밀착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나시르는 가격 경쟁에 나선 중국에 천연가스에 대한 권리를 넘긴다. 이 충격으로 가뜩이나 재정적 위기를 겪던 코넥스는 어떤 조치가 필요해진다. 한편 미국의 CIA는 이란 테헤란에서 중동 무기 밀매 조직을 추적하는 작전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미사일 1기가 사라진다. CIA는 자신들의 작전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새로운 작전이 필요한 상황이 된다. 이슈는 이슈로 덮어야 한다. 새로운 중동작전은 친중국 노선으로 ‘말을 바꿔’ 타려는 왕세자 나시르를 암살하는 일이다. 마침 나시르의 동생인 또 다른 왕자가 권좌를 노리고 쿠데타를 모의 중이다. CIA는 이란에 있던 베테랑 요원 밥 반스(조지 클루니)를 소환해 나시르 작전을 시작한다.
한편 코넥스는 이 중동 산유국의 페르시아만 천연가스 시추권이 중국에 넘어가자 대신 카자흐스탄 유전의 채굴권을 따낸 중소 석유업체 킬린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이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 동원된 인물이 M&A 전문 변호사 베넷 홀리데이(제프리 라이트)이다. 그는 거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먹는’ 과정에서 미 정부, 특히 법무부 내에서 뇌물 수수와 불법이 횡행하고 부패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음을 간파한다. 베넷은 그러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눈을 감는다. 결국 ‘코넥스 – 미법무부 – 미 정보국 CIA – 중동의 비밀경찰국 – 중동의 반개혁적 왕정’이라는 연결선은 이렇게 완성된다. 모든 건 다 ‘그놈의’ 석유와 천연가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합리적이고 개혁적이며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위정자는 살해되기가 십상이다. 거대 자본은 차곡차곡 쌓아온 중소 자본을 약탈한다. 민주사회를 원하는 이들은 탄압받고 추방된다. 석유 등 화석연료를 팔아서 생긴 막대한 이익은 특정 세력이 독점한다. 사람들 대다수의 삶은 좋아지지 않는다.
중동 산유국의 이주 노동자인 파키스탄 청년 와심(마자르 무니르)이 전형적이다. 그는 미국 석유회사 코넥스의 페르시아만 정유소에서 일한다. 코넥스는 시추권을 잃자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한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와심은 취업에 필요한 아랍어를 배우러 이슬람 학교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다. 와심에게 이란에서 사라진 미사일 1기가 배정된다. 와심은 코넥스-킬린 사의 새 유정 테러 작전에 동원된다.

출처 : Daum 영화
영화 <시리아나>만큼 일명 ‘오일 폴리틱스(Oil Politics)’의 극단적 폐해를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이토록 명백하고 명쾌하게 그려 낸 작품은 없다. 거의 유일무이하며 현대의 거의 모든 전쟁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차지하려는 정치적 욕망 때문에 빚어져 왔음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현대 국가 분쟁의 핵심은 석유이며 이 국가 간 싸움은 국가 내 내전으로까지 이어지곤 하는데, 나라마다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이유도 결국 그 이득을 사유화하려는 탐욕 탓이다. 중남미와 중동 국가들 다수에 중산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에너지 산업 자본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피지배층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지식인, 중산층은 이들에겐 불필요한 계층이다. 이들 나라에서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이 나오고 극좌 무장 집단이 나오는 이유이다.

출처 : Daum 영화
자, 그리하여 다시 돌아 돌아 태양광 에너지이다. 에너지의 근원, 그 생산 원천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된다. 석유는 이제 파낼 만큼 파냈다. 천연가스는 이미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된 지 오래다. 태양광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국토 면적이 있으면 된다. 나중엔 국토가 침탈 대상이 될 수는 있겠다. 태양광 기술의 선진성 문제가 국가 간 우열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세계 국가의 계급 문제, 남북문제는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석유와 천연가스 문제를 미사일로 해결하는 시대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석유의 채굴과 판매를 위해 거대한 시추 설비와 파이프라인, 정유 공장이라는 복잡하고 ‘폭력적인’ 시설, 정치체제가 필요했다면, 태양광은 단순하다. 반도체로 된 태양광 패널이 햇빛을 받아 직류전기를 생성하면, 이 직류전기를 교류전기로 바꾸는 변환기(인버터), 밤에 사용할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ESS)가 있으면 된다. 지구를 마구잡이로 파헤치지 않으면 지진 같은 자연재해도 줄어든다. 자고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좀 있다고 한들, 태양은 똑같이 빛과 에너지를 줄 것이다. 오일 폴리틱스는 솔라(Solar) 폴리틱스로 전환돼야 한다. 진정으로 시급한 일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글쓴이 소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연합뉴스, 와이티엔(YTN)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영화 주간지 <필름2.0(FILM2.0)>과 <씨네 버스(cine bus)>, <엔키노(nKINO)> 등에서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역임, 현재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DMZ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불온한 영화를 위하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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