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의 글로벌 리포트] ESS와 함께 질주하는 미국 태양광 발전…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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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근 전력통계는 우리보다 반 발짝 앞서 미래를 살펴보는 창 같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느냐보다 전기를 어떻게 저장하고 이동시키느냐가 에너지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태양광 발전은 이제 더 이상 낮 시간에만 반짝 빛나는 전원이 아니다. 미국의 대규모 태양광은 전년 대비 36퍼센트 성장했고 분산형 소규모 발전은 12퍼센트 늘었다.
ESS는 이 장면의 숨겨진 주인공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양수식 저장의 거대한 수력저장 능력 위에 배터리 ESS의 신축적인 용량을 빠르게 더해가고 있다. 배터리 기반 저장 출력은 단 1년 사이에 60퍼센트 가까이 확장되었다.
전력은 제조가 아니라 재배치가 되고, 발전소는 공장이 아니라 저장금고가 되고, 에너지는 kWh가 아니라 시간과 가격의 교차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빛으로 들어온 전기가 밤으로 넘어갈 때 가격은 바뀌고, 수익은 바뀌며, 전력의 의미는 바뀐다.
이 변화 속에서 원자력은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설비 용량은 9만8천 메가와트대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다. 원전은 안정성을 대표하지만 성장의 최전선에서는 밀려난다. 전력 계통의 중심은 더 이상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가격 신호를 읽고 시간대별로 운용되는 지능형 전력 시스템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국의 오래된 문제 하나가 떠오른다.
계통과 ESS 문제.
발전소는 지었지만 송전망이 받쳐주지 못하고, 전력은 생산되지만 전압과 주파수 기준이 이를 소화하지 못하는 현상. 규제는 수년째 느리게 움직이고 계통 보강은 발표되고 선언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공사가 지연된다. 태양광과 풍력은 설치되지만 전력망의 문턱에서 멈춘다. 발전은 허용했으나 송전은 실현하지 못한 구조, 이것이 한국의 고질적인 병증이다.
우리는 재생에너지 용량 확대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계통 연결 지연 때문에 출력제한을 시키고 있다. 태양광 발전량이 증가하는데도 계통 접속 승인은 줄줄이 막히고 ESS 병합 운영 인프라는 빈약하다. 원전 중심의 고정적 전력 구조에서 이런 문제는 사실상 필연이다.
미국이 보여주는 변화는 명확하다.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장 설비를 확충하고 전력망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일보다 전기를 흐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생산만 하다 막히는 구조에서는 에너지는 자원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이제 한국은 발전보다 계통에 투자해야 한다.
에너지의 경쟁력은 용량이 아니라 연결성에서 나온다. 한국이 ESS를 심장으로 삼고 계통을 혈관으로 바꿀 때, 비로소 재생에너지는 통계가 아니라 체계가 되고, 부하는 부담이 아니라 흐름이 된다. 계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태양광은 계속 늘어도 빛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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