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루의 시선] 전력망 운영 시스템을 키우는 독일 vs. 출력제어만 하는 대한민국…미래 경쟁력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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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세계에서 전기요금이 비싼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독일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단순히 환경을 중시하는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일이 바라보는 에너지 산업의 중심이 발전소가 아니라 전력망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태양광 산업을 이야기할 때 모듈 가격이나 REC 가격, 계통 접속 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독일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는 시간이 갈수록 범용 제품이 된다. 성능만 확보된다면 어느 나라에서 생산하든 사용할 수 있다. 결국 경쟁력은 설비 자체가 아니라 수백만 개의 설비를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나온다는 판단이다.
독일의 강점은 발전 설비가 아니라 전력망 운영 기술이다. 독일 전역에는 수많은 지붕형 태양광 설비와 가정용 ESS가 설치되어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주체와 소비하는 주체가 끊임없이 변한다. 여기에 유럽 각국과의 전력 거래까지 더해진다. 전력망 운영 난이도는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독일은 이 복잡한 구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있다. 수백만 개의 발전원과 저장장치, 소비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한다.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바뀌고 국가 간 전력 흐름이 변해도 전체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독일 기업들이 세계 전력망 소프트웨어와 자동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의 전력 시장은 소비자도 전력망 운영에 참여한다. 전기요금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가격이 낮아지고 부족한 시간에는 높아진다. 소비자는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전력 가격을 확인하고 세탁기나 전기차 충전을 조정한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조정되는 구조다.
한국도 분산형 전원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발전 설비 중심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 전국 태양광 발전소는 19만 기를 넘어섰지만 지붕형 태양광과 가정용 ESS, 실시간 수요반응 체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발전소를 늘리는 것과 전력망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최근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출력제어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출력제어는 계통 운영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출력제어가 상시적인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통이 부족하면 발전기를 멈추고, 송전망이 부족하면 발전기를 멈추고, 전기를 저장할 수단이 부족해도 발전기를 멈추는 구조가 된다. 전력망 문제의 부담이 발전사업자에게 집중되는 방식이다.
독일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선택한 것은 출력제어 중심의 운영이 아니라 전력망 중심의 투자였다. 송전망을 확대했고 ESS를 늘렸으며 실시간 전력요금제와 수요반응 시장을 발전시켰다. 전기가 남을 경우 발전기를 정지시키는 것보다 전기를 이동시키고 저장하며 소비를 유도하는 방법을 먼저 찾았다.
이 차이는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태양광 모듈은 중국 기업도 생산할 수 있고 배터리는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공급하고 있다. 발전설비 자체는 점차 범용 제품이 되어가고 있다. 반면 수십만 개의 발전소와 저장장치, 전기차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제어하는 시스템은 쉽게 구축할 수 없다. 여기에는 통신 기술과 소프트웨어, 데이터 분석 역량, 전력시장 운영 경험이 필요하다.
에너지 산업의 부가가치는 점차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 발전량을 예측하고 전력을 거래하며 계통을 안정화하고 분산형 자원을 통합하는 플랫폼 산업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독일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축적하고 있는 것은 발전설비 용량만이 아니다. 전력망 운영 데이터와 시스템 구축 경험,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ICT 산업 생태계다.
한국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태양광 패널을 몇 장 더 설치하는 데 있지 않을 수 있다. 전국에 분산된 수십만 개의 태양광 발전소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ESS와 전기차를 어떻게 계통 자원으로 활용할 것인지, 전력 거래와 수요 관리를 어떻게 디지털화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분산에너지특구와 유연접속 제도, 가상발전소(VPP), 지역 단위 전력거래 시장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발전소를 만드는 산업에서 발전소를 연결하는 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재생에너지의 성패가 발전량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핵심은 얼마나 많은 설비를 연결할 수 있는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에 있다. 전력망이 미래 에너지 산업의 플랫폼이 되는 이유다.
에너지 안보의 관점에서도 시사점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석유와 가스를 확보하는 국가가 경쟁력을 가졌다. 앞으로는 전력망 운영 기술을 확보한 국가가 경쟁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발전소는 건설할 수 있지만 운영 경험은 단기간에 만들 수 없다. 독일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얻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은 태양광 설비 용량이 아니라 전력망을 통제하는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다.
한국 태양광 산업에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더 많은 패널을 설치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수십만 개의 태양광 발전소와 ESS를 연결하고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데 있는가.
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은 발전소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기가 아니라 전력망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왔고 준비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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