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판매는 질주하는데 충전은 '대기'… 인프라 없이 규제만 앞서는 정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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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 42.7% 증가… 점유율 역대 최고
충전기는 49만기 넘어섰지만 급속충전기 부족·2,700기 장기 방치
PHEV 7시간 제한 등 규제 강화…"인프라 확충이 먼저" 지적
고유가와 정부 보조금,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인하가 맞물리면서 국내 전기차 시장이 다시 성장 궤도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전체 신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판매 증가 속도와 달리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충전 환경 개선보다 이용 규제를 먼저 강화하면서 전기차 이용자의 불편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통계 분석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9만356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7% 증가했다.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11.1%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업계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 시장이 다시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고유가는 전기차 수요 확대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4월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8.8원, 경유는 2,002.9원까지 오르며 전쟁 이전보다 약 17~25% 상승했다. 연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유지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차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올해 1분기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기차 판매는 5만3343대를 기록했고, 국내 전체 전기차 시장 규모도 약 8만대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정부 보조금과 제조사의 가격 인하 전략이 맞물리면서 20대 소비층의 전기차 구매 비중도 22.6%까지 확대되는 등 전기차가 특정 소비층을 넘어 대중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세와 달리 충전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충전기는 현재 약 49만기 수준까지 확대됐다. 숫자만 보면 빠르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용 편의성을 좌우하는 급속충전기는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는 전기차 16대당 급속충전기 1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이면 충전 대기 행렬이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다.
충전기 관리 부실도 심각한 문제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국 약 2,700기의 충전기가 전기요금 미납, 운영 중단, 사업자 부도 등의 이유로 장기간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충전기는 1년 이상 전원이 꺼진 채 방치되면서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설치 확대에만 집중한 나머지 운영과 유지관리 체계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3년 준공된 수도권의 한 복합건축물은 오피스와 오피스텔, 상업시설이 함께 입주해 있으며 지하 1층부터 지하 6층까지 대규모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충전기는 8기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1기는 고장으로 장기간 사용이 불가능해 실제 이용 가능한 충전기는 7기뿐이었다. 법정 설치기준 충족 여부와 별개로, 입주자들은 전기차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충전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충전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 반복되고, 고장 충전기가 발생하면 대기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충전기를 찾아 여러 층을 돌아다녔다", "충전소에 갔더니 고장으로 표시됐다", "급속충전 대기만 30분 넘게 걸렸다"는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공동주택에서는 충전기 부족으로 자체 운영 규정을 강화하거나 충전 시간을 제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충전구역 이용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에 대한 충전시간 제한이다. PHEV 차량은 완속충전구역을 일정 시간 이상 점유할 경우 신고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제도의 취지는 충전구역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충전시설 자체가 부족한 현실에서는 이용자에게 부담만 전가하는 규제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직장인과 공동주택 입주민은 퇴근 후 차량을 충전하고 다음 날 출근하면서 차량을 이동시키는 생활 패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장시간 충전 제한은 현실적으로 야간 충전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충전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용시간만 제한하면 이용자 간 갈등과 신고 문화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제 정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유가로 전기차 수요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충전 인프라 부족과 관리 부실이 해결되지 않으면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은 어렵다는 진단이다. 또한 단순히 충전기 설치 대수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고장률과 가동률을 공개하고, 유지관리 책임을 강화하며, 실제 충전 수요를 반영한 재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차량 성능 경쟁을 넘어 충전 인프라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판매량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충전 환경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충전시설 확충보다 이용시간 제한과 신고제 등 규제를 먼저 강화하는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현실과 어긋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기차 보급 확대는 차량 판매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나 불편 없이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인프라 부족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이용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규제는 전기차 확산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이제는 단속보다 충전망 확충과 운영 효율 개선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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