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부터 기후위기 알았던 한전…누적배출 비용 4870억 달러 이상·조기 사망 위험 35만 명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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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전 경영진단, 기후규제·화석연료 위험 이미 경고…그 뒤 30년간 화력발전 확대 이어와한전·발전5사 2011~2023년 누적배출 약 26억 톤…전문가 분석 “사회적 비용 최소 4870억 달러”
기온 관련 조기 사망 위험에도 약 35만 명 기여 추정…“몰랐던 위험 아닌, 알고도 이어온 선택의 책임 물어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발전자회사들이 적어도 30년 전부터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중심 전력체계가 초래할 위험을 경고받고도 이후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전과 발전자회사 5곳의 2011~2023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5억 6000만 톤으로, 이를 최근 기후경제학 연구에 적용하면 전 세계에 초래한 사회적 비용이 최소 약 4870억 달러(약 686조 8000억 원)에 이르고 향후 약 35만 명의 기온 관련 조기 사망 위험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됐다.
기후솔루션은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슈브리프 ‘한전은 알고 있었다: 기후위기를 알고도 석탄발전을 확대한 30년과 그 책임’을 발표했다. 이번 브리프는 농업인들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중부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남동발전·한국동서발전을 상대로 제기한 기후피해 손해배상소송 과정에서 확보·제출된 자료와 전문가 의견서 등을 토대로 한전 그룹의 기후위기 인식과 이후 의사결정의 궤적을 추적했다.
브리프에서 새롭게 조명한 자료는 1996년 통상산업부 발주로 한국산업경제연구원 등이 수행한 ‘한국전력공사 경영진단’이다. 당시 경영진단은 1992년 체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국제적 대응이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로 현실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유연탄발전 확대를 포함하고 있던 당시 장기전력수급계획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늘날의 탄소규제와 에너지전환을 둘러싼 위험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전의 경영 방향을 진단하는 공식 연구에서 대안과 함께 이미 30년 전 구체적으로 제기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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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국전력공사 경영진단' 표지 및 해당 페이지 발췌. 기후솔루션 제공.
한전 스스로도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인식했다. 한전은 2005년 발간한 첫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회사의 역할이자 지속가능경영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전력공급사슬의 친환경화와 청정에너지 개발,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장기 경영계획의 실행 과제로 제시했다. 2020년에는 2050 탄소중립을 내세웠고, 이후에도 화석연료 중심 전력시스템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실제 발전설비 투자는 이 같은 경고와 선언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한전 그룹의 화력발전 설비용량은 1990년 1만 741MW에서 2000년 2만 8714MW, 2010년 4만 3308MW로 늘었다. 특히 파리협정이 채택된 직후인 2016~2017년에는 당진·태안·삼척·보령 등에서 1GW급 대형 석탄화력발전기 8기, 총 약 8.2GW가 새롭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국내 신규 석탄발전 억제 정책이 추진된 이후에도 화석연료 투자는 계속됐다. 한전은 2020년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와 베트남 붕앙 2호기 석탄발전 사업 투자를 결정했다. 이는 한국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해이자 국내에서는 이미 신규 석탄발전의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이 시행된 이후였다.
브리프는 한전 그룹이 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에 직접 보고한 자료를 토대로 2011~2023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25억 6000만 톤으로 집계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의 산업 및 화석연료 부문 배출량의 약 31%, 전 세계 배출량의 약 0.5%에 해당한다.
기후솔루션의 의뢰로 국제환경법연맹(Environmental Law Alliance Worldwide·ELAW)의 조니 챔벌린(Johnnie Chamberlin) 박사가 작성한 전문가 의견서는 이 누적배출량을 탄소의 사회적 비용(Social Cost of Carbon·SCC)과 탄소의 사망 비용(Mortality Cost of Carbon·MCC)에 적용해 기후피해 규모를 정량화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탄소 사회적 비용인 톤당 190달러를 적용하면 한전 그룹의 2011~2023년 배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약 4870억 달러로 추정된다.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치는 거시경제적 피해를 반영해 탄소 1톤의 사회적 비용을 1200달러 이상으로 산정한 최근 연구를 적용하면 비용은 3조 달러를 넘어선다.
또 탄소 1톤의 추가 배출에 따른 장래 기온 관련 사망 위험을 추정한 연구를 적용할 경우, 한전 그룹의 같은 기간 누적배출은 향후 약 35만 1000명의 기온 관련 조기 사망 위험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한전 그룹의 배출로 특정 개인의 사망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추가적인 온실가스 배출이 전 세계적으로 기온 관련 조기 사망 위험을 얼마나 높이는지를 통계적으로 환산한 결과다.
이번 분석은 농업인들이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인 기후피해 손해배상소송의 핵심 쟁점과도 맞닿아 있다.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은 소송에서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전력거래소의 지시에 따라 화력발전을 수행했으며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이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자신이 직접 발전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원고 측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개별 발전사업자에게 특정 발전소의 건설을 강제하는 계획이 아니며, 발전사업자들에게 실제 사업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한전이 발전5사의 지분 전부를 보유한 모회사이자 국내 송·배전 및 판매를 담당하는 전력산업의 핵심 주체라는 점에서 발전자회사의 사업 방향과 에너지전환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해외에서는 대규모 배출기업의 누적배출과 기후피해 사이의 책임을 법적으로 판단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2025년 독일 함 고등법원은 페루 농부가 독일 에너지기업 RWE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개별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기업이 자신의 배출 기여도에 비례해 기후피해에 대한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법적 가능성을 인정했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김예니 변호사는 “이번에 확인된 기록이 보여주는 것은 한전이 기후위기와 화석연료 의존의 위험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적어도 30년 전부터 이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고 실제로 구체적인 경고까지 받았다는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화력발전 중심의 선택을 반복해 온 만큼 이제는 그 선택이 초래한 기후피해에 대한 책임을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배출기업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과학적으로 정량화하는 방법론이 발전하고 있고, 해외 법원에서도 배출 기여도에 따른 민사책임 가능성이 인정되고 있다”며 “이번 소송은 우리 법원이 대규모 배출기업의 과거 선택과 기후피해 사이의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지 묻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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