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통정보 공개기준 7년째 '공백'…태양광 사업자, 불투명한 계통정보에 기후부 상대 헌법소원
본문
- 여유용량 확인 후 허가 신청했지만 '접속 불가'로 불허가…부지·인허가 비용 고스란히 손실
- 기후솔루션·전국태양광발전협회 기자회견…부령 제정·공개 범위 확대 촉구
- 접속 문 넓힌 정부, 2030년 100GW 실현하려면 투자 예측가능성도 확보해야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전력망 계통정보 공개 기준을 정부가 마련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15일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장관을 상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 측은 전기사업법 제20조의2가 위임한 정보공개 기준을 부령으로 제정하지 않은 정부의 '행정입법부작위'가 영업의 자유와 알 권리,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기후솔루션과 전국태양광발전협회는 같은 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통정보 공개 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전기사업법 제20조의2는 2019년 4월 23일 공포된 법률 제16364호로 신설돼 같은 해 10월 24일 시행됐다. 송전·배전사업자가 다른 전기사업자의 설비 이용을 위해 전기설비 용량과 이용 현황 등의 정보를 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개하도록 한 규정이다. 그러나 시행 후 7년 가까이 지나도록 공개 범위와 방식을 구체화할 부령은 제정되지 않았다. 이번 헌법소원은 정부가 법률이 위임한 세부 규정을 만들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을 구한다.
기후솔루션 하정민 변호사는 “이번 헌법소원은 전기사업법 제20조의2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마련하여야 할 정보공개 기준을 제정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묻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구인은 2026년 4월경 태양광 발전소 2곳을 설치하기 위해 한전을 통해 계통 여유용량을 확인한 뒤 발전사업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한전이 ‘주변압기 용량 부족에 따른 전력계통 연계 불가’ 의견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불허가처분을 받았다. 청구인 측은 인허가 절차가 진행되는 사이 다른 사업자가 접속 용량을 선점한 것으로 설명했다. 이미 토지 관련 비용과 인허가 비용 등을 지출한 청구인은 전기설비의 접속가능용량 및 접속대기현황 등 정확한 계통정보를 사전에 확보했다면 투자 지역과 시기, 규모를 달리 판단해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개별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 최진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사업자가 수억 원을 들여 인허가를 마치고 정식 접속 신청을 한 뒤에야 상세한 계통 검토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허가를 진행하는 수개월에서 수년 사이 여유 용량이 소진되더라도 사업자는 그 과정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 부회장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7년간 방치해 온 전기사업법 제20조의2 위임 부령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현재 계통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변전소별·연도별 여유용량과 망 보강계획 등을 한전ON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는 것과,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명확한 기준에 따라 갱신·제공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 청구인 측의 문제의식이다.
양 단체는 이번 소송이 접속 보장 요구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공동기자회견문은 "우리는 모든 발전사업의 접속이나 수익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업자가 계통 접속 여건을 파악하고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위험에 따라 투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계통정보 공개기준을 기후부가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9월 29일 전력망 혁신대책을 발표하며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이상 보급을 위한 전력망 체계 개편을 제시했다. 호남권 계통관리변전소 지정 해제와 유연접속 확대 등은 재생에너지 사업의 진입 기회를 넓히는 개선이다. 다만 연결 기회가 늘어나는 것과, 사업자가 언제 연결되고 어떤 조건에서 전기를 판매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계통정보가 불투명하면 사업자는 접속 가능성을 판단하지 못한 채 부지와 인허가 비용을 먼저 부담하게 된다. 이런 불확실성이 반복되면 신규 진입과 후속 투자가 위축돼 정부의 보급 목표 달성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보공개는 기존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반이기도 하다. 양 단체는 계통 데이터의 접근성과 가독성을 개선해, 사업자가 입지를 검토하는 첫 단계부터 지역별·계통설비별 접속 여건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보 부족으로 특정 지역에 사업이 몰리거나 접속이 어려운 입지에 비용을 먼저 지출하는 상황을 줄이고, 계통이 수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사업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양 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정보공개 기준의 부령 제정, 공개 범위의 확대·구체화, 공개 형식과 갱신 주기의 개선을 요구했다. 접속 가능 용량과 대기 현황, 예상 접속 시기, 망 보강 진행 현황, 접속지점별 출력제어 기록·전망 등 사업자의 위험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지도형 데이터로 공개하고, 실시간 공개가 어렵다면 적어도 월 단위로 갱신하며 입력·갱신 시점을 함께 표시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이번 소송의 직접적인 판단 대상인 기준 미제정 문제와 구분되는 후속 제도 개선 요구다.
해외에서는 이미 계통정보 공개를 제도화하고 있다. 영국은 배전사업자가 변전소별로 접속을 기다리는 사업의 용량과 진행 단계를 매월 공개하도록 했고,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송전사업자에게 접속 가능 용량을 히트맵으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국회에서도 전력정보의 접근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소영, 최기상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접속 가능 용량과 접속 대기 현황 등 공개 대상을 구체화하고, 기관별로 분산된 전력정보를 통합·공개하는 플랫폼을 구축·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후솔루션은 이러한 입법 논의와 별개로 현행 전기사업법이 이미 위임한 정보공개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 전력계통시장팀 주다윤 연구원이 낭독한 공동기자회견문에서 양 단체는 "정보공개는 사업자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늘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계통 접속의 문을 넓히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며 "사업자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다면, 정부의 재생에너지 목표도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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